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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의 역사,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큰 족적 - 민주화 투쟁에서 국가 설계로 이어진 정치 인생 - 배제와 귀환을 거쳐 완성한 정책 정치 - 애도 속에서 되새기는 역사적 교훈
  • 기사등록 2026-01-26 12:14:27
  • 기사수정 2026-01-26 12: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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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 기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별세하면서, 민주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투쟁의 문제의식을 법과 제도로 구현하며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공과와 의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베트남 출장 중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제작-대전인터넷신문] 

이해찬 전 총리는 1952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전후 한국 사회의 격동기를 통과하며 성장했다. 농촌 지역에서 체감한 지역 간 격차와 교육 환경의 차이는 이후 그의 정치 철학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경험과, 지역에 따라 삶의 기회가 달라지는 구조적 불평등을 동시에 인식한 세대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그는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적 문제의식을 본격화했다. 학생운동 과정에서 겪은 탄압과 옥고는 개인의 시련에 그치지 않고, 권력이 어떻게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지를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 그의 투쟁은 단순한 정권 반대가 아니라, 교육·지역·계층 전반의 구조적 불균형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됐다.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이해찬 전 총리는 거리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입법과 제도 설계에 집중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공교육 중심 정책과 고교 평준화 확대를 추진했다. 논란은 컸지만, 교육을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 영역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이후 한국 교육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정점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 재임기였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과 국가균형발전을 총괄하며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국가 운영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헌법적 제약과 정치적 반발 속에서도 정책의 방향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세종시라는 현실적 대안을 남겼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단순한 도시 건설을 넘어, 국가 공간 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강한 화법과 단호한 리더십은 당내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공천 배제라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라는 선택을 했고, 정당의 간판이 아닌 개인의 정치적 무게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당선됐다. 이후 복당하며 다시 당의 중심으로 복귀한 이 경험은 배제와 귀환, 좌절과 회복이 교차한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그는 여당 대표와 원로 정치인으로서 당과 국정을 이끌며 정책 조율과 제도 개편에 관여했다. 그의 정치에는 늘 희로애락이 공존했다. 운동권 시절의 분노, 권력의 정상에서 느낀 책임의 무게, 비판과 논란 속 고립의 시간, 그리고 정책이 제도로 남았을 때의 성취가 교차했다. 그는 인기 정치인이라기보다, 논쟁을 감수하며 구조를 바꾸려 한 정치인이었다.


이해찬 전 총리가 남긴 주요 성과는 특정 법안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정책,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논의, 행정수도 구상 등은 법과 제도로 축적되며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유지됐다. 이는 그의 정치가 단기 성과보다 정책의 지속성과 구조적 변화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충분히 조율하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함께 남아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는 완벽한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투쟁의 문제의식을 제도와 정책으로 완성하려 했던 드문 정치인이었다. 역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하다. 정치는 말과 이미지가 아니라 구조를 남기는 일이며, 배제와 실패를 겪더라도 책임 있게 견디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이해찬이라는 이름은 논쟁과 함께 남겠지만, 그가 남긴 제도와 질문은 대한민국 정치사가 계속해서 마주해야 할 과제로 남을 것이다.


한편 언론에 따르면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유해는 현지시간 26일 밤 베트남에서 대한항공편으로 출발해,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도착 직후 시신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돼 빈소가 마련될 계획이다. 유족과 관계기관은 장례 형식을 협의 중이며, 사회장 또는 국가장·국회장 등 다양한 장례 절차가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고인의 민주화 및 국정 기여를 고려해 국가장 여부를 신중히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공항에서 직접 운구를 맞이하고, 장례기간 동안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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