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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 향년 73세로 별세…베트남 현지에서 심근경색으로 - 7선 의원·국무총리·민주당 대표 역임한 중진 정치인 - 민주화 이후 입법·행정 두루 거친 ‘정책형 정치인’ - 장례 절차는 유가족·정부 협의 거쳐 결정
  • 기사등록 2026-01-26 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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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베트남 공무 출장 중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1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로,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원로 정치인의 사망 소식에 정치권 전반에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베트남 출장 중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제작-대전인터넷신문]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자격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공식 일정을 수행하던 중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해외 출장 중 전해진 비보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시대를 대표한 정치 지도자를 잃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서울 관악을과 세종을 지역구에서 내리 7선에 성공하며 입법부의 대표적 중진으로 자리 잡았다. 국회에서는 예산과 교육, 행정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정책 전문성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내며 교육 개혁을 추진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를 맡아 참여정부 시기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다. 총리 재임 시절에는 행정 개혁과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이끌며 세종시로 대표되는 행정수도 논의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관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후에도 그는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하며 당 체제를 정비했고, 원로 정치인으로서 당내 전략과 노선 설정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근까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아 대북·통일 담론과 당의 중장기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치권에서는 그를 두고 ‘강한 소신과 직설적 화법을 지닌 정치인’, ‘정책과 제도를 중시한 실무형 지도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해 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굴곡 속에서 입법과 행정을 모두 경험하며 한 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적다.


장례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유가족과 정부, 더불어민주당 등 관계 기관이 협의를 진행 중이며, 해외 사망에 따른 시신 국내 운구 절차를 마친 뒤 빈소 마련과 장례 형식, 발인 일정 등이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이해찬 전 총리의 별세는 한 정치인의 생을 마감하는 사건을 넘어,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화 이후 제도 정치의 형성과 진화를 함께했던 한 축이 역사 속으로 물러났음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정치적 공과와 유산을 둘러싼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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