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 기자] 대전고법이 세종시 전동면 송성리 친환경종합타운 입지결정·고시를 취소하면서, 항소심에서 쟁점이 된 입지선정위원회 주민대표 자격과 향후 입지선정 절차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전고법이 세종시 전동면 송성리 친환경종합타운 입지결정·고시 처분을 취소하면서 입지선정위원회 주민대표 자격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전고법과 친환경종합타운 조감도를 합성한 이미지. [그래픽·이미지=대전인터넷신문]
대전고등법원은 지난 1일 전동면 송성리 일원 주민들이 세종시를 상대로 제기한 폐기물처리시설 입지결정·고시 처분 관련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주민 측의 예비적 청구를 받아들여 세종시가 2023년 7월 13일 내린 친환경종합타운 입지결정·고시를 취소했다. 소송비용도 세종시가 부담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을 이해하려면 주민들이 법원에 요구한 ‘무효’와 ‘취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은 입지결정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해당 처분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무효확인을 주위적으로 청구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위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입지결정·고시를 취소해 달라는 예비적 청구도 함께 제기했다.
항소심에서는 입지결정·고시가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고 볼 정도라는 주민 측 주위적 청구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입지선정 절차상의 문제가 취소 사유로 인정되면서 예비적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친환경종합타운 사업 자체가 법원에서 ‘원천 무효’ 판정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기존 입지결정·고시가 취소된 만큼 판결이 확정될 경우 향후 사업 추진 절차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심과 항소심 판단을 갈라놓은 핵심 쟁점은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한 ‘주민대표’의 자격 문제다.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선정 과정에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주민대표가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한다. 이번 소송에서는 이 주민대표의 자격을 단순히 세종시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볼 수 있는지, 폐기물처리시설 주변지역과 실질적인 지역적 연관성을 가진 주민이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북부권쓰레기소각장반대대책위원회가 3일 공개한 항소심 판결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3월 30일 최종 입지를 의결한 입지선정위원회의 주민대표 5명 가운데 적어도 4명은 관련 법령에서 요구하는 ‘폐기물처리시설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대표’로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다.
대책위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재판부는 단순히 세종시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폐기물처리시설의 ‘주변 주민’이 되는 것은 아니며, 법령상 ‘주변’의 의미와 후보지와의 거리, 지역적 관계 등을 실질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앞서 본지 취재에서도 입지선정위원회 주민대표 가운데 시설 예정지가 있는 전동면 주민이 아닌 당시 세종시 신도시 지역 거주자가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주민대표는 공개모집 방식으로 선정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세종시는 당시 주민대표 선정이 관련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기존 주민대표의 사퇴와 후속 추천 등의 어려움 속에서 관련 규정을 검토해 세종시에 거주하면서 입지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사를 주민대표로 선정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책위가 공개한 판결 내용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는 주민대표 추천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법에서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로 주민대표를 구성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번 항소심에서는 폐기물처리시설 입지를 결정할 때 사업 추진 필요성이나 주민대표 선정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별개로 법률이 정한 주민대표 구성과 주민참여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북부권쓰레기소각장반대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을 “진짜 주민의 승리”라고 평가하며 세종시에 대법원 상고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법이 요구한 자격을 갖춘 주민대표가 필요한 수만큼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원회가 구성됐고, 그 위원회의 의결에 기초한 입지결정 역시 위법하다고 본 것”이라며 “주민들의 반대가 크거나 행정기관이 주민대표를 선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정 주민참여 절차를 사실상 우회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친환경종합타운 입지가 현재의 전동면 송성리로 결정되기까지의 과정도 다시 문제 삼았다. 행복도시 폐기물처리시설 계획 변경과 전동면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 당시 조상호 세종시장 후보와 가진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을 거론하며 세종시가 항소심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조 시장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30일 대책위원들과 만나 “최초의 입지를 변경하는 과정에 여론 수렴 절차나 그 방식에 대해서 참 아쉬움이 크다”며 입지 변경 과정에서 보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책위는 당시 조 후보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도 밝혔다며 “세종시가 이번 판결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상고를 통해 갈등을 장기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대책위가 함께 제기한 행복도시 폐기물처리시설 계획 변경 과정과 특정 시설 입소자 동의서 문제, 폐기물 운반차량 증가에 따른 환경·교통 문제 등은 이번 항소심에서 취소 사유로 다뤄진 주민대표 자격 문제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들 사안이 판결에서 어느 범위까지 인정되거나 판단됐는지는 판결문을 통한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세종시의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확충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친환경종합타운은 세종시가 증가하는 생활폐기물 처리에 대응하기 위해 전동면 송성리 일원에 추진해 온 폐기물처리시설이다. 시는 하루 400t의 생활폐기물과 80t의 음식물류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2030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세종시는 2030년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에 대비해 자체 처리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과 별개로 세종시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을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로 남는다.
당장 주목되는 것은 세종시의 대법원 상고 여부다. 세종시는 판결문과 관련 법령을 검토한 뒤 법률 자문과 상고 시 승소 가능성, 행정 신뢰와 사업 추진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세종시가 상고하면 입지선정위원회 주민대표 자격에 대한 항소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다시 다뤄질 수 있다. 반대로 상고하지 않거나 대법원에서도 항소심 판단이 유지돼 판결이 확정되면 취소된 입지결정·고시를 전제로 후속 행정절차를 검토해야 한다.
다만 판결이 확정된다고 해서 현재 단계에서 ‘송성리 입지가 자동으로 백지화된다’거나 ‘주민대표만 교체하면 사업을 그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문제가 된 주민대표를 다시 선정하는 것만으로 절차상 하자를 보완할 수 있는지, 입지선정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지, 후보지 평가와 의결을 포함한 입지선정 절차를 어느 단계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지는 판결 확정 여부와 판결문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거쳐야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판결 이후 세종시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역시 대법원 상고 여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판결문 분석을 토대로 법정 요건을 충족하는 주민대표를 포함해 입지선정 절차를 다시 정비하는 방안과 함께, 송성리 재추진 여부와 대체입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민·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갈등조정 또는 공론화 절차를 검토하는 방안도 선택지로 거론될 수 있다.
폐기물 처리방식 자체를 다시 점검하는 것도 과제다. 세종시는 올해 친환경종합타운에서 음식물류 폐기물 처리기능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한 만큼, 향후 생활폐기물 발생 전망과 기존 처리시설 활용 가능성, 적정 소각용량, 운반거리와 교통·환경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시설 규모와 처리체계의 적정성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항소심의 핵심은 송성리 후보지 자체의 적정성보다는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선정 과정에서 법률이 정한 주민대표 구성과 주민참여 절차를 준수했는지에 있다. 세종시의 상고 여부와 판결 확정 시 입지선정 절차를 어디까지 다시 밟아야 하는지가 장기간 이어진 친환경종합타운 갈등의 다음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