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정부가 중부권 5극3특 성장엔진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육성하는 가운데 조상호 세종시장이 7일 “주민 동의 없는 송전선로 건설은 반대한다”고 밝혀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망 확보와 주민 보호를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조상호 세종시장(왼쪽)이 송전선로 건설과 관련해 “주민 동의 없는 송전선로 건설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세종지역 주민들이 신계룡~북천안 345kV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정부가 중부권 5극3특 성장엔진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추진하면서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와 주민 수용성을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사진·편집-대전인터넷신문]
정부가 대전·세종·충북·충남을 묶은 중부권의 핵심 성장산업으로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선정하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망 확보가 지역 산업정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은 생산시설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대규모 전력과 높은 수준의 전력공급 안정성이 요구된다. 중부권이 관련 기업투자와 산업 생태계를 확대하려면 산업용지와 인력, 교통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5극3특 지역성장엔진 정책을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 지역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규모 기업투자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중부권에는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비롯해 고부가 바이오의약·소재, 첨단 배터리, 미래 방산·수송시스템 등이 성장엔진으로 제시됐다.
산업통상부는 7일 지방정부 등이 참여하는 ‘지방주도 성장엔진 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성장엔진 육성전략과 범부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대규모 기업투자를 중심으로 재정·세제·금융·인재·기술·제도·인프라 등을 연계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충청권에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관련 투자와 산업 육성 정책이 추진돼 왔으며, 정부의 5극3특 성장엔진 선정으로 권역 차원의 산업 육성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문제는 산업 입지와 전력망을 따로 놓고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본지는 지난해 12월 신계룡~북천안 345kV 송전선로 갈등을 보도하면서 세종시가 “전력망 안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세종시는 입지선정위원회의 임기 연장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위원회 재구성과 주민 의견 청취 강화를 요구했다. 송전망 구축의 필요성과 별개로 노선 선정 과정에서 주민 신뢰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어 본지는 지난 1월 대전·세종·충남 송전선로 갈등을 분석하면서 반도체 등 전력 다소비 첨단산업을 수도권에 집중시키고 필요한 전력은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하는 구조가 지역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김종민 의원은 수도권에 전력 다소비 산업을 집중시키고 전력은 전국에서 끌어오는 구조를 문제로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산업입지와 전력망 정책을 별도로 설계할 경우 송전망 건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경과지역에 집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중부권 자체를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 성장엔진으로 선정하면서 정책환경과 논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수도권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왜 충청권이 송전망 부담을 져야 하느냐’는 문제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중부권이 전력수요가 큰 첨단산업을 직접 육성하면서 필요한 전력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민 수용성 문제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본지가 지난 3월 보도한 신계룡~북천안 송전선로 갈등 당시 전의·전동·장군면 주민 150여 명은 단순히 지중화냐 지상선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종을 통과하는 송전선로 자체가 삶을 위협한다며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주민 반발이 이어지자 세종시는 3월 30일 이승원 경제부시장 주관으로 ‘송전선로 대응 추진 TF’를 가동했다. 세종시의원과 주민대표, 전문가 등이 참여해 한전과의 협의와 입지선정위원회 대응, 주민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하면 주민 거주지역 지중화는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지중화 자체가 주민 동의를 대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선의 필요성과 경과지역 선정 과정, 주민 의견 반영, 지중화 범위와 지원방안 등을 함께 논의해야 실질적인 수용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조상호 세종특별자치시장도 7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송전선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 분명히 했다. 조 시장은 후보 시절 송전선로 백지화를 강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일단 사실관계를 하나 확인해야 되는 게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던 거는 우리 주민 동의 없는 송전선로 건설은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조 시장의 입장은 송전선로 건설 자체를 조건 없이 반대한다기보다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조 시장은 이 같은 입장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전력 관계자와 금남면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 송전선로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민 거주지역을 통과하는 구간의 지중화를 강조했다. 조 시장은 “특히 한전에서는 주민 거주지역 같은 경우는 지중화해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송전선로가 건설되더라도 최대한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금남면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도 지중화에 대한 확약을 받아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사실상 저는 확약이 된 걸로 말씀도 좀 드렸다”고 밝혔다.
다만 조 시장이 전한 한전 측의 입장과 세종지역 특정 구간의 실제 지중화 확정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만으로 구체적인 지중화 대상과 범위, 비용 부담 주체, 시행 시기까지 확정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 시장 역시 “나머지 지역들 전체적으로 제가 한 번 더 보겠다”고 밝혀 지역별 송전선로 계획과 주민 영향을 추가로 살펴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정부도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신규 철탑을 줄이고 마을 주변을 지중화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정책 방향과 세종지역 개별 노선에 대한 구체적인 지중화 계획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중요한 문제는 중부권 성장엔진 육성이 실제 대규모 기업투자로 이어질 경우 필요한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다.
향후 기업유치와 산업거점 조성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예상 전력수요와 공급대책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실제 투자 단계에서 전력 인프라가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첨단산업 육성을 이유로 송전선로 경과지역 주민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요구하는 것 역시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결국 ‘반도체 산업 육성이냐, 송전선로 반대냐’는 양자택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은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의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산업계획과 전력계획을 동시에 설계하는 것이다. 중부권 성장엔진 육성계획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유치 대상 산업과 투자 규모에 따른 예상 전력수요를 산정하고 기존 변전소와 송·배전망의 공급 여력을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추가 전력망이 필요하다면 기존 선로 활용과 용량 확대, 선로 통합 가능성 등을 우선 살피고 신규 송전선로가 불가피한 경우 주거지역과의 이격과 지중화 가능성을 사업 초기부터 함께 검토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중화와 주민 동의를 별개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일부 주민들이 이미 지중화 여부를 넘어 송전선로 자체의 철회를 요구해 온 만큼 지중화 방안만으로 주민 동의가 확보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선의 필요성과 경과지역 선정 과정에 대한 충분한 정보 공개, 과학적 영향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주민 동의를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확인할 것인지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비용과 편익의 공정한 배분이다. 지중화는 주민 피해와 경관 훼손 등을 줄일 수 있지만 가공 송전선로보다 일반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와 한전, 지자체뿐 아니라 대규모 전력수요를 발생시키는 산업과 기업을 포함해 관련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송전망 경과지역에 부담만 집중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역 지원과 이익공유 구조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중부권 공동 전력전략이다. 5극3특 성장엔진이 세종만의 산업정책이 아니라 대전·세종·충북·충남이 연계되는 초광역 전략인 만큼 산업입지와 예상 전력수요, 발전·변전시설, 송전망 등을 개별 지자체가 각각 대응하기보다 중부권 차원에서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세종지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계룡~북천안 345kV 송전선로 사업이 중부권 5극3특 반도체·디스플레이 성장엔진을 위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기존 송전선로 사업과 새롭게 추진되는 성장엔진 정책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두 사업을 연결해 ‘중부권 반도체를 위해 세종 송전선로를 건설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정책환경은 분명 달라졌다. 정부가 중부권의 핵심 성장엔진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선정하면서 중부권 역시 전력 다소비 첨단산업 육성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됐다.
그만큼 중부권도 ‘기업은 어디에 유치하고 필요한 전력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책임 있는 해답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조 시장이 ‘주민 동의 없는 송전선로 건설 반대’를 분명히 한 만큼 세종시가 풀어야 할 과제 역시 송전망의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중부권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특정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지 않도록 주민 동의와 노선 검증, 지중화, 비용분담과 이익공유를 산업정책과 함께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처럼 산업입지는 먼저 정하고 전력망은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더구나 중부권도 전력 다소비 첨단산업의 직접적인 수혜지역이 될 수 있는 만큼 필요한 전력망의 부담을 또 다른 지역에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방식 역시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중부권 5극3특 성장엔진의 성패는 기업을 얼마나 유치하느냐뿐 아니라 그 기업을 움직일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반도체는 지역으로 가져오면서 송전망의 부담과 피해는 또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구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산업입지와 전력망, 주민 보호를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으로 설계해야 한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