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추석을 앞둔 19~20일 세종시 연서면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김치를 담그고 송편을 빚고 노래를 부르며 옛 명절의 추억을 되살렸다. 보림사와 연서면이 함께 마련한 이번 행사는 음식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웃고 이야기하며 명절을 즐기는 자리로 펼쳐졌다.
20일 세종시 연서면 보림사에서 열린 추석맞이 나눔잔치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직접 송편을 빚고 있다. 어르신들은 송편을 만들며 옛 명절의 추억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보림사 신도회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 어르신들의 귀가길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첫날인 19일 어르신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준비된 배추만 100포기. 배추를 다듬고 양념을 버무려 김치를 담그는 한편 나박김치와 불고기, 고추절임, 깻잎장아찌 등 추석 밥상에 올릴 다양한 음식도 함께 만들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받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평생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먹을 음식을 장만했던 어르신들이 다시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 만들기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버무리는 동안 저마다 간직한 손맛과 조리법이 오갔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명절을 준비했던 기억, 지금보다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의 추석 풍경 등 같은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둘째 날인 20일에는 분위기가 한층 명절다워졌다. 어르신들이 다시 둘러앉아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인 송편을 직접 빚으면서다.
반죽을 손바닥에 올리고 소를 넣어 하나하나 모양을 냈다. 오랜만에 송편을 빚는 어르신부터 익숙한 손놀림으로 옆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어르신까지 손은 분주했고 이야기꽃은 끊이지 않았다.
추석맞이 나눔잔치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직접 송편을 빚고 있다. 어르신들은 송편을 만들며 옛 명절의 추억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20일 보림사에서 어르신과 신도, 행사 참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편을 빚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음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명절의 정을 함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행사에 참여한 어르신들에게 돌아갈 송편이... [사진-대전인터넷신문]
송편을 빚는 시간은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됐다. 부모와 함께 맞았던 어린 시절 추석부터 결혼 후 자녀와 가족을 위해 명절 음식을 준비했던 시절까지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추석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이날 행사장에는 조상호 세종시장도 방문했다. 조 시장은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기원한 뒤 자리를 함께해 직접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조상호 세종시장이 20일 세종시 연서면 보림사에서 열린 추석맞이 어르신 나눔잔치 현장을 찾아 송편을 빚고 있는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조상호 세종시장이 20일 보림사에서 열린 추석맞이 어르신 나눔잔치에서 어르신들과 한자리에 앉아 직접 송편을 빚고 있다. 조 시장은 이날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고 건강을 기원하며 명절의 정을 함께 나눴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강미애 세종시교육감도 첫날인 19일에 이어 20일 다시 행사장을 찾았다. 이틀 연속 어르신들을 만난 강 교육감은 안부를 묻고 건강을 기원하며 명절을 준비하는 현장을 함께했다.
송편 빚기가 끝난 뒤에는 점심공양이 이어졌다. 함께 음식을 만들던 어르신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며 잠시 숨을 돌렸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이날 행사의 또 다른 즐거움인 어르신 노래자랑이 펼쳐졌다.마이크를 잡은 어르신들이 한 분씩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를 선보이자 행사장은 금세 흥겨운 무대로 바뀌었다.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자리에 앉은 어르신들은 손뼉을 치거나 장단을 맞추며 함께 즐겼다.
특히 이날 노래자랑에서는 94세 어르신의 열창이 눈길을 끌었다.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이어가자 객석에 있던 80세가 넘은 어르신들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며 힘찬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20일 보림사 추석맞이 나눔잔치에서 94세 어르신이 노래자랑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이날 어르신의 노래가 이어지자 함께한 80대 이상 어르신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누가 노래를 더 잘했는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연장자인 94세 어르신의 열창을 바라보며 80대 어르신들이 보내는 박수에는 반가움과 존경, 그리고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자는 응원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김치를 담그던 손은 송편을 빚었고, 송편을 빚던 손은 어느새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틀간의 행사가 단순한 명절 음식 나눔을 넘어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웃고 즐기는 시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번 행사가 여느 명절 나눔행사와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준비된 음식이나 물품을 전달하는 데만 목적을 두지 않고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해 몸을 움직이고, 또래 이웃들과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며 명절을 함께 즐기도록 했다.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다시 이웃에게 돌아갔다. 보림사는 배추김치와 나박김치, 불고기, 고추절임, 깻잎장아찌 등을 참여 어르신들이 속한 경로당에 전달해 이날 함께하지 못한 지역 어르신들도 명절 음식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음식 만들기와 송편 빚기에 참여한 어르신들에게도 송편과 반찬, 간장 등을 별도로 제공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가족과 이웃의 밥상에서 다시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행사의 중심에는 보림사와 신도들의 손길이 있었다. 보림사는 음식 재료와 행사 준비는 물론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행사장을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차량을 제공해 이동과 귀가를 지원했다. 연서면도 공동주최자로 힘을 보탰다. 행사에 필요한 테이블과 면이 보유한 각종 자재를 지원했고, 한재현 연서면장은 필요한 물품과 자재를 직접 차량에 싣고 행사장까지 운반하는 등 준비 과정부터 현장을 함께했다.
무변지월 보림사 큰스님은 본지 취재에서 “어르신들은 평생 가족과 이웃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정을 나누며 살아오신 분들”이라며 “이번에는 한자리에 모여 직접 음식을 만들고 송편을 빚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안부를 살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이 다시 지역의 다른 어르신들에게 전해진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며 “무엇보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면서 즐겁고 뜻깊은 추석 명절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김경희 보림사 신도회장은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보다 함께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소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송편을 빚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행사를 준비한 신도들도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현 연서면장은 “지역 어르신들이 이웃들과 만나 직접 음식을 만들고 함께 즐기면서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자리”라며 “민간의 따뜻한 나눔과 행정의 지원이 어우러져 어르신들의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필요한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틀간 이어진 나눔잔치의 의미는 배추김치 100포기와 송편, 반찬을 얼마나 나눴느냐에만 있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오래된 기억을 꺼내고 서로의 노래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웃었던 시간 자체가 또 하나의 나눔이었다.
특히 94세 어르신의 노래에 80대 어르신들이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던 모습은 이날 행사의 의미를 압축했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즐기는 공동체의 주인공들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다시 앞치마를 두른 어르신들의 손끝에서는 음식과 함께 잊고 있던 명절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김치를 담그고 송편을 빚었던 손은 마지막에는 박수를 치며 흥겨운 장단을 맞췄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고, 함께 노래한 이틀은 어르신들에게 또 하나의 추석 추억으로 남았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