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대전시가 지난해 집중호우로 붕괴된 유등교 가설교를 건설하면서, 한국산업표준(KS) 인증조차 없는 비KS 중고 복공판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전시는 13억 원 예산 절감을 이유로 녹이 슨 자재를 사용하고도 품질검사를 뒤늦게 진행했으며, 제조 이력조차 불분명한 자재를 ‘KS강재’라 주장했다. 이를 두고 시민들은 “매일 오가는 다리를 실험대 삼은 것”이라며 충격과 분노를 쏟아냈다.

■ 폭우로 철거된 유등교, ‘가설교’마저 안전 논란
유등교는 대전 중구와 서구를 잇는 4번 국도상 교량으로, 2024년 7월 폭우로 침하되어 철거된 뒤 대전시가 3년간 본공사 동안 사용할 임시 가설교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 가설교의 주요 구조물인 복공판(다리 바닥 철판)이 KS 인증을 받지 않은 중고품이었다는 점이다. 대전시는 “KS 철강재로 제작된 제품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철민 의원(대전 동구)이 입수한 자재 승인서와 시험자료를 분석한 결과, 철계단용 비KS 강재로 제작된 중고 복공판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복공판은 다리의 바닥판을 이루며 수십 톤의 차량 하중을 견디는 핵심 구조물이다. 피로 누적 시 국부 파괴나 전체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국토교통부 「가설공사 일반사항」은 모든 가설 자재가 KS 인증 또는 자율안전확인신고품이어야 하며, 재사용품이라면 반드시 품질검사 및 시험성적서 첨부가 의무화돼 있지만 대전시는 이러한 기본 절차를 생략한 채 공사를 승인했다.

■ ‘KS강재’라더니… 12년 전 폐지된 기준의 중고품
장 의원실 확인 결과, 유등교 가설교에 쓰인 복공판은 기술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12년 전 폐지된 ‘KS D 3633(바닥용 무늬강판)’ 기준으로 제작된 비표준 강재였다. 이는 계단·바닥재용으로 제한되는 용도의 강재로, 교량 하중 구조물로 쓰는 것은 기본 설계 기준을 무시한 위험한 시공행위다.
또한, 이 복공판은 수도권 지하철 9호선 6공구 현장에 납품됐던 중고 자재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시공사 ㈜하이브리텍은 이를 ‘신품처럼 위조된 서류’로 제출했고, 대전시는 서류상 제조사와 생산이력조차 검증하지 않은 채 자재 사용을 승인했다. 장 의원은 “대전시가 ‘신품으로 새로 제작된 KS강재’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확인된 자재는 오래된 중고 비표준 강재였다”며 “시민의 발밑에 놓인 다리가 행정편의와 비용절감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특정공법’ 명목으로 독점시공… 공사비 73억 중 13억 절감
이번 공사는 대전시가 ‘구조적 안정성 확보가 가능한 특정공법’을 가진 업체로 제한해 발주한 사업이다. 이에 ㈜하이브리텍이 선정됐지만, 본공사 입찰에서는 1~9순위 건설사가 모두 포기해 하이브리텍이 사실상 독점 형태로 시공권을 확보했다. 유등교 가설교에는 약 3,200장의 복공판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품 H형 복공판의 조달단가는 장당 약 73만 원, 중고품은 20~30만 원 수준으로 약 13억 원의 원가절감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안전기준을 무시한 ‘가짜 절감’이었다. 대전시는 2025년 1월 23일이 되어서야 복공판 16장에 대해 품질검사를 의뢰했다. 이 시점은 이미 공사가 마무리되고 개통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으며, 시험용 자재도 실제 사용품이 아닌 별도의 복공판이었다. 사후검사조차 ‘눈속임’ 수준의 형식행정이었던 셈이다.

■ 장철민 “시민의 다리를 실험대로 삼은 무책임 행정”
장철민 의원은 1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대전시는 특정공법을 이유로 공사를 지연시키더니, 정작 선정된 업체가 중고 자재를 쓰는 것을 방치했다”며 “이는 시민 안전을 방기한 전형적인 부실행정이자 예산 낭비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3억 절감을 위해 시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행정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즉시 유등교 가설교 전 구간의 정밀 안전진단과 자재 반입 경로 감사, 책임자 문책과 예산 환수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안전을 위협한 자재를 사용하고도n ‘KS강재 사용’이라 허위 해명한 대전시의 행정 대응은 이미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린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 법적·행정적 책임은 명확
이번 사안의 1차 책임은 발주기관인 대전시 건설관리본부에 있다. 품질검사와 자재검증을 생략한 행위는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100조 위반이며, 관련 공무원은 「공무원 징계령」 제2조에 따라 견책·감봉·정직 등의 징계 대상이다. 서류 허위 승인이나 제조일자 조작이 드러나면, 「형법」 제231조(사문서 위조)와「형법」 제356조(업무상 횡령) 적용도 가능하다.

시공사 ㈜하이브리텍은 「건설산업기본법」 제82조 제1항(부실시공·거짓보고)에 따라 등록취소·영업정지, 「지방계약법」 제31조(부정당업자 제재)에 따른 공공입찰 제한(최대 2년)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허위 승인서로 공사비를 수령한 경우 사기죄(형법 제347조)가 적용된다. 감리단 또한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 위반으로 감리의무 불이행이 확인될 경우, 과태료(3천만 원 이하) 및 등록취소 처분이 가능하다.
■ 공사비 환수 및 감사 절차
「지방재정법」 제96조는 부실시공 등으로 인한 부당집행 예산에 대해 전액 환수 및 배상명령을 명시하고 있다. 유등교 가설교 공사비 73억 원 중, 중고 복공판 사용으로 절감된 약 13억 원이 환수 대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건설안전발전협회와 시민단체는 대전시에 감사원 직권감사 요청서를 제출했고, 대전시 감사관실은 내부 감사를 검토 중이다. 감사 절차는 ▲민원 제기 → ▲시 자체 감사 → ▲감사원 병행 감사 →▲위법·부실 확인 시 공사비 환수 및 징계 → ▲검찰 수사 의뢰 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 전문가 “행정 편의와 안전 무시의 전형”
건설안전발전협회 관계자는 “KS 인증 없는 복공판을 교량 바닥에 사용하는 것은 교량 공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 기준을 위반한 사례”라며 “이런 자재를 승인하고 포장까지 덮어 부식을 감춘 행위는 의도적 은폐로 보일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교량안전 전문가는 “하중을 분산한다는 이유로 80mm 아스팔트를 덮은 것은 오히려 복공판 피로도를 가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며“아스팔트 아래 녹슨 복공판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장기적으로 구조적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유등교 가설교 사태는 행정의 본질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임을 잊은 결과다. 대전시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안전 검증을 무시하고, 시공사는 신뢰를 배신하며 부실 자재를 납품했다. 감리단은 그 모든 과정을 침묵으로 묵인했다. 그 결과, 시민의 발 아래에는 비표준 중고 철판이 깔렸다. “시민이 매일 건너는 다리를 녹슨 철판으로 만든 도시가 스마트시티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장철민 의원의 지적처럼, 대전시는 지금이라도 전면적인 안전점검과 예산 환수, 책임자 처벌, 공사 재검증에 나서야 한다. 행정의 무책임과 기업의 탐욕이 만들어낸 이 사태를 그대로 덮는다면, 다음 사고는 예고된 재난일 뿐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