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과 함께 한 나라꽃 무궁화
- 행정자치부, 광복절 맞아 무궁화 의미 되찾기 나서 -
행정자치부(장관 홍윤식)는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함께 한 무궁화를 되돌아보고, 국가상징으로서 무궁화의 의미 확산과 선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지난 2월29일 세종시 소재 대통령기록관 전시관 입구에 총 넓이 126㎡의 무궁화 정원을 조성하고, 기념식수와 더불어 개장식에 홍윤식 행자부 장관,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 신원섭 산림청장, 이충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이상진 국가기록원장, 강선모 TJB 대전방송 사장, 홍성덕 한국토지주택공사 본부장 등 내빈 70여명이 참석한 모습.
이번 연구는 시대별로 문헌 고찰를 통해 우리 민족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무궁화의 기록과 흔적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9월말 본 연구가 마무리 되면 국화로서의 무궁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국민들이 국화에 대한 자부심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과 함께 고조선 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지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표상으로서 전통이 계승되어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신구대학교 김영만 교수는 “독립군들이 나라 잃은 서러움과 분노,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광복의 의지와 희망 등을 담아 불렀던 군가와 시가 중 38편의 노래 가사에 무궁화가 `무궁화´, ´무궁화 동산`, ´무궁화 강산`, ´무궁화 화원`, ´근화`, ´근화강산`등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라며 “당시 독립군들이 무궁화를 널리 애창하였고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이미 독립군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증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7권과「한국독립운동사 자료」3권 등에 나오는 내용이나 당시 언론에 게재된 무궁화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이미 임시정부나 국민들에게도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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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 1919년 5월 한국경성독립회본부가 작성한 대한국민독립대회 진술서에 대한민국을 `근화고국(槿花故國)´으로 표현(「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7권 <한일관계사료집>) • 사례2) 1924년 2월 29일 제20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식에서 `…무궁화 노래로 식을 시작하여 태극기에 향하여 경례가 있은 후…대한민국의 만세를 세 번 부르고….´ 등 무궁화가(無窮花歌) 제창(1924년 3월 8일자 동아일보 /「한국독립운동사 자료」3권 <임정편Ⅲ> ) • 사례3) 192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독자와 기자> 란의 <조선국화 무궁화의 내력 :고래로 조선에서 숭상한 근화가 무궁화로 변해 국화가 되기까지>에 대한 기사에서 `무궁화는 나라의 자랑거리요 백성이 다 같이 숭상하는 근화´라고 보도 |
이와 같이 무궁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는 달리, 당시 “일제는 무궁화를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꽃으로 받아들여 무궁화 관련 운동이나 무궁화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했다.
일제가 펴낸「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사전」에 의하면 `무궁화 강산´, `근화´, `근역´ 등은 불온한 뜻이 들어 있는 조심해야할 문구로 여겼고,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운동을 펼쳤던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이 십자당 사건으로 투옥되면서 그가 가꾸며 전국에 보급했던 무궁화도 강제 이식당하는 수난을 받았다.
더불어 신문사명 배면을 장식했던 무궁화 도안도 검열과정에서 삭제되는 등 곤혹을 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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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1863∼1939)은 1933년 강원도 보리울(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서 7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에 나눠주며 민족혼을 고취시켰는데, 1933년 십자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무궁화도 동시에 인근 지역에 강제 분배되거나 훼손됨(동아일보 1933.12.27.기사) • 사례2) 동아일보는 1923년부터 매년 무궁화사진 등 관련 기사를 신문에 소개하였으나 1938년 2월 10일일부터 동아일보 제호 배면을 장식했던 무궁화 도안과 한반도 사진이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삭제됨(「일제침략사 한국36년사」12권) |
이처럼 무궁화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꽃이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