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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백제성벽에서 6~7세기 백제와 신라 유물 출토 - 세종시 6일 시굴현장 공개하고, 단계별 발굴조사·국가 문화재 지정 추진
  • 기사등록 2020-11-06 15: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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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인터넷신문=세종/박향선기자]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이성 정상부에서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성벽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조각, 성문에 사용된 철제 못 등이 출토되면서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 축조된 성으로 추정되는 이성 정상부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대전인터넷신문]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이춘희)와 한성 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희)가 시 지정 기념물 제4호 이성(李城)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한 결과 삼국시대 축조된 성벽시설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시굴조사는 이성의 정상부 일대와 동벽 구간에 대한 조사로서 백제가 처음 축조한 이후, 신라에 의해 점령되었고, 성벽은 2차례 이상 고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의 성벽은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와 관련된 성벽으로 추정되며, 이성 정상부 일대에서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다양하게 출토돼 이성이 위치한 세종시 일대를 두고 대치하던 백제, 신라 양국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2차례 이상 고쳐 쌓은 흔적이 당시의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격전이 있었음을 추정케하고 있다. [사진-대전인터넷신문]


이성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처음 축조한 이후 점차 바깥으로 성벽을 증축하면서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바깥쪽 성벽의 높이는 약 8m 정도로 높게 쌓았으며, 지형에 따라 사용된 성 돌의 크기와 형태를 다르게 조성하였다. 동벽 안쪽 다짐 층에서는 백제 토기와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되고 있어 이성을 처음 축조한 국가는 백제일 것으로 추정되며, 시굴조사 결과 이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한 이후 신라에 의해 점령됐고, 성벽은 2차례 이상 고쳐 쌓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가장 바깥쪽의 성벽은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와 관련된 성벽으로 추정된다.


정교하게 재단된 석축이 당시 선조들의 정교한 석공기술을 가늠케하고 있다.


조사결과, 이성의 구조와 양상은 기존의 성곽조사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특한 구조로 향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운주산성과 금이성 등의 주변 지역 산성과의 비교를 통해 세종시 내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차 시굴조사 지점과 발굴된 유물. [사진-대전인터넷신문]


한편, 세종시는 6일 전의면 신방리 이성산성 시굴조사 현장에서 전문가 자문회의 및 현장설명회를 열고 이성의 정상부 일대와 동 벽 구간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굴조사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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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 정상부 일대는 4단으로 이뤄진 다중 평탄지가 확인됐고 각 평탄지마다 석축을 쌓아 구획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가장 아래쪽의 1단에는 다각 건물지, 2단은 저장시설, 3단은 지하 저수시설, 가장 위쪽의 4단은 장대치를 배치했으며, 각 평탄지는 용도에 따라 공간의 구획과 면적을 각기 다르게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성 산성의 축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 동 벽의 회절 부에서는 성벽 주변에서 성문에 사용된 철제 못이 여러 개 발견되어 동문지(東門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서쪽의 평탄지는 흡사 오늘날의 군대 연병장처럼 당시 군사훈련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시굴조사로 기존의 성곽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이성의 구조와 양상을 확인한 세종시는 향후 연차별 발굴조사를 통해 세종시 내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히는 동시에 향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해 복원·정비할 계획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박향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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