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민중미술작가이자 여성주의 미술 대표 작가로 호명되는 정정엽 개인전이 7월 10일까지 대전 동양장에서 개최된다.
정정엽 개인전 ‘여자는 길을 좋아한다’는 2021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개최한 ‘걷는 달’ 전시의 일부를 동양장 B1과 동양장 윈도우 공간에 맞추어 구성한 전시다. ‘걷는 달’은 정정엽의 작업 중 여성의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 인물을 그린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로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한 다양한 인물을 그린 작품을 전시했으며 ‘여자는 길을 좋아한다’는 그중 작가가 최근에 작업한 여성의 몸짓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는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삼종지도(三從之道), 여필종부(女必從夫), 칠거지악(七去之惡)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겼으며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와 같은 말로 여자의 주체적인 삶을 부정해왔다. 여성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지만 오랜 유교적 전통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혼한 남자가 그 부인을 지칭할 때 흔히 ‘집사람’이라는 단어를 쓴다. '집사람'은 남자는 집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 안에서 일한다는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단어인데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집 밖’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구분 없이 사용하곤 한다. 전시 제목에서 ‘길’은 이렇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집’이라는 단어와 대립한다.
정정엽은 이전에 ‘집사람’으로 사는 여성의 실존을 다룬 바 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취업공고판 앞에 서 있는 결혼한 여성을 그린 <집사람>(1991),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들고 가는 여성 군상을 그린 <식사 준비>(1995), 비치는 천에 여성의 실루엣을 그려 겹쳐 걸어 놓은 작업을 했던 <집사람>시리즈(2000~2018) 등이 있다. 정정엽은 이 같은 작업에서 ‘집사람’의 당당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그렸다.
‘집’을 떠나 ‘길’을 나선 이들의 몸짓은 더욱더 주체적이며 한껏 자유롭다. 작품 속 인물은 배경과 분리되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며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미술관에서 카페에서 바닷가에서 그리고 빗속을 행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 평범한 모습에 시선을 주고 공감하는 태도는 여성의 삶과 존재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의 작업이며 동시에 동시대를 사는 여성에 대한 작가가 연대하는 방식이다. 정정엽은 전시 도록 『걷는 달』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여성의 삶은 길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전범(典範)이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알려지거나 특별한 발자취를 남긴 여성뿐만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여성이 걷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정엽은 일찍이 비판적 시각을 장착하고 노동운동과 미술운동을 통해 약자의 편에 서서 모순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 여정에는 ‘여성’이 존재해 왔고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자기 내면으로부터 출발한 시선 그 자체다. '여자는 길을 좋아한다'에 전시된 작품은 작가의 눈에 비친 여성이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이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이기도 하다.
민중미술작가이자 여성주의 미술 대표 작가로 호명되는 정정엽은 팥과 콩, 나물과 싹튼 감자, 벌레와 나방 같은 소외된 연약한 존재들을 작업의 주제로 그리면서 ‘여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해왔으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소위 ‘집사람’, ‘안사람’으로 호칭하던 여성들이 집이 아닌 길 위에 선 모습을 그린다. 홀로 길을 걷거나, 길에 앉아 쉬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비바람을 뚫고 행진하는 등 길 위에 있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볼 수 있다. 전시는 ‘여자는 길을 좋아한다’와 ‘붉은 드로잉’으로 구성되며, 신작을 포함한 20여 점의 회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6월 17일(금) 오후 4시부터는 동일한 공간에서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과 오프닝 행사를 진행한다. 정정엽이 그린 인물은 동시대적 우정을 나눈 실존하는 여성들이다. 토크에서는 전시 작품 속 주인공들을 초대해 작가와의 인연, 교감의 순간 그리고 여성의 삶에 관한 난상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별도의 신청 없이 현장 참여 가능하다. 전시가 열리는 동양장 B1은 40여 년 된 대전의 낡은 여관 지하공간에 개관한 대안공간으로, 2018년부터 독특한 장소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인 전시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기간 중 별도의 휴관일 없이 무료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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