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대전인터넷신문=충남/박세종 기자] 충청의 대표적 호국정신의 상징이자 그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새겨야 할 뜻깊은 유적인 금산 칠백의총 기념관이 내일(16일)부터 정식으로 개관을 한다.


(사진-금산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과 승장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이 금산 연곤평(延昆坪)에서 1만 5,000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와 의로운 넋을 함께 모셔놓은 금산 칠백의총 내 칠백의총 기념관이 3월 16일부터 정식 개관한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싸운 칠백의사의 충절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건립되어 지난해 9월 준공식까지 마쳤으나 코로나 19로 개관이 미뤄지다가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이번에 일일 방문객 270명으로 제한하며 개관하게 된 칠백의총 기념관은 전체면적 2,442㎡,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의 규모로, 유물 관리 수장고, 전시실, 4차원 입체(4D) 영상관, 학예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공간은 크게 2개 전시실로 구성되었다. 1전시실은 임진왜란의 개요와 1592년 7~8월 사이에 있었던 1차‧2차 금산전투의 전개과정, 의미, 전후 칠백의총의 조성과정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2전시실은 고경명, 조헌, 영규대사 등 당시 전투를 이끌었던 의병장들에 대한 소개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며 함께 싸웠던 칠백의사와 승병들에 대한 추모공간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문화재청 칠백의총관리소는 “앞으로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사의 연구·전시·교육활동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조헌의『조천일기』(보물 ‘조헌 관련 유품’ 중 일부)등 보물급 소장유물을 수록한 상설전시도록을 발간, 다양한 교육·체험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출처-금산군)


(1) 칠백의총(七百義塚)

1592년 8월 18일(음력)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의병장 조헌선생, 의승장 영규대사 등 칠백의사가 금산 연곤평에서 만오천여 명의 왜적과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조헌선생의 제자인 박정량, 전승업 등이 그분들의 유해를 거두어 만든 무덤이다.


(2) 종용사(從容祠)

임진왜란 당시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位)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1647년 당시 호서·호남지방의 유림에 의하여 사당이 건립되었고, 1663년 현종께서 “종용사”라 사액하셨다. 1940년 일제의 항일유적 말살정책에 따라 훼손되었다가 1952년 복원되었고, 1971년 재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취의문(取義門)

칠백의총의 내삼문(內三門)에 해당하는 문으로 의총문과 종용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취의문(取義門) 역시 1971년에 실시된 제1차 정화 공사 때 새로 지어졌다. 이 문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솟을 대문으로 철근 콘크리트조 맞배 지붕 초익공 건물이다.


(4)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重峰趙先生一軍殉義碑)

의병장 조헌선생이 이끄는 칠백의사가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임진왜란 11년 후(1603년 4월)당시 해평부원군이었던 윤근수(尹根壽)가 글을 짓고 김현성(金玄成)의 글씨로 새겨 건립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금산경찰서장 “이시까와 미찌오(石川道夫)”에 의해 폭파되었던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8·15 광복 이후 파내어 보관하여 오던 중 1971년 경역 확장 시 그 폭파된 비를 붙여서 비각을 세우고 보존하여 내려왔다. 2009년 9월에 분리된 상태로 비각 안에 있었던 몸체와 머릿돌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다시 세웠으며, 비의 규모에 맞추어 비각도 목조양식으로 새롭게 개축하였다.


(5) 기념관(記念館)

1976년 건립된 건물로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임진왜란 당시의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이 보관·전시되어 있다. 유물은 조헌선생이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교지(敎旨)〉와 조헌선생이 1574년 명나라를 다녀올 때 손수 쓰신 〈조천일기(朝天日記)〉, 조헌선생에게 선조(宣祖)와 고종황제(高宗皇帝)께서 내리신 〈교서(敎書)〉, 영조(英祖)의 명으로 발간된 20권 10책의 〈중봉전집(重峰全集)〉, 조헌선생의 빛나는 언행과 업적을 간추려 기록한 〈항의신편(抗義新編) 및 목각판(木刻板)〉,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정조(正祖)와 순조(純祖)께서 내리신 〈제문(祭文)〉, 주요 참모였던 이광륜(李光輪)선생의 공을 높여 정조(正祖)께서 내리신 〈교지(敎旨)〉, 금산 눈벌 싸움에서 순절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선생의 업적과 행적을 수록한 〈제봉문집(霽峰文集)〉등이 있다. 7점의 유물은 1989년 8월 1일 보물 제1007호로 지정되었다.


(6)의총문(義塚門)

칠백의총 정문에서 종용사로 들어서는 도중에 만나는 첫 문으로 칠백의총의 외삼문(外三門)에 해당한다. 의총문(義塚門)은 1971년에 실시된 제1차 정화 공사 때 새로 지어졌다.

이 문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서 지붕은 맞배 지붕 철근 콘크리트조로 지어졌다.


(8) 칠백의사순의탑(七百義士殉義塔)

1976년 칠백의사의 거룩한 뜻을 영원히 지켜가고자 칠백의총과 마주보는 위치이며 전적지인 연곤평이 내려다보이는 현 위치에 건립하였다. 13.8m의 탑신 전면에는 “칠백의사순의탑“이라 새겼고 탑신 하부는 화강암에 용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상부에는 동(銅)으로 만든 창과 방패가 장식되어 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박세종 기자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03-15 09:21:17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신뉴스더보기
유니세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