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청 광장에 우뚝선 크리스마스트리 온누리를 밝히다
세상을 밝히는 트리처럼 주변의 소외된 이웃과 따뜻한 연말을...
기독탄신일·예수성탄대축일·크리스마스 등으로 불리는 12월 25일을 기념하는 행사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세종시청 광장에서 12일 개최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인가 몰라도 연말연시에 우리 주변의 불우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함께하는 연말 행사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예수의 사랑실천과도 일맥을 같이하며 세종시청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온세상을 밝히고 함께 어우러져 함께 온기를 느끼며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해 본다.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절 중의 하나이며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12월 25일을 예수의 출생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아르메니아 교회는 주현절인 1월 6일을 성탄절로 삼고 있다. 12월 25일을 지키는 관습이 최초로 정착된 시기는 서방교회에서 4세기 중반,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 말로 추정된다.
이 날을 출생일로 정한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로마에서 동지(冬至)에 행해졌던 축제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녔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농경신인 사투른(Saturn)과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숭배하는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후대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로마의 교회는 전통적인 축제일을 예수의 생일과 동일시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당시 미트라숭배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풍습을 억압하는 대신 동화시키는 방법을 사용, 태양의 재탄생에 비유하여 `세상의 빛´인 예수의 탄생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입장은 점차 널리 퍼져갔으며,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한 대항논리를 정교화시키면서 강화되었다. 신학적인 정당화가 이루어졌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날을 3월 25일로 정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예수의 삶이므로 응당 완전히 꽉 찬 기간 동안 생애가 이루어졌으리라 보기 때문에 수태도 3월 25일에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 계산에 의하면 예수의 출생은 12월 25일이다.
12세기에 이르면 이 날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제일(祭日)이 되었으며,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성행하여 성 니콜라스(St. Nicholas)는 선물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미국의 뉴잉글랜드지방에도 이전되어 1856년 이전에는 법정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끈질기게 이 날을 중심으로 선물교환 등을 하면서 전통을 이어나갔고, 19세기에 이르러 크리스마스 트리와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대중적 풍습이 가미되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또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과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때 등장하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수목숭배와 연결시킬 수 있으나 가까이는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 연극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기에서 에덴의 동산을 상징화하면서 `낙원의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연극이 탄압을 받게 된 뒤에는 집안으로 들여와 사탕·과일·촛불로 장식하게 되었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북유럽국가들로 전파되었고, 1841년에는 빅토리아여왕의 남편인 알버트공에 의하여 영국에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 펜실베이니아지방에 이주한 독일계 정착민들에 의하여 전달되었으며, 곧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를 공공장소에 놓게 된 것은 바로 미국에서부터였다.
우리나라에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풍습이 전래되어 나갔다. 그러나 이탈리아·스페인 및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는 그리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색깔은 녹색과 붉은색이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삶은 녹색으로,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붉은색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날과 관련된 장식의 색은 이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붉은 포인세티아의 사용이나 크리스마스 화환은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 때는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캐럴´이라는 말은 원래 플루트 연주에 맞추어 추는 춤곡이라는 의미로 밝고 경쾌하며 후렴과 반복이 행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단순하고 율동적인 노래인 캐럴은 원래 15세기에 영국에서 황금기를 맞게 되나, 종교개혁과 뒤이은 개신교의 영향으로 캐럴의 발전이 둔화되어 미약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베들레헴의 작은 성(O Little Town of Bethlehem)」·「오 성스러운 밤(O Holy Night)」 등이 이때 작곡되어 현재까지 계속 불리고 있다.
대중화된 노래로서는 「징글벨(Jingle Bells)」·「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등이 있다. 영국 소설가 디킨스 (Dickens,C.)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1843)이라는 작품은 크리스마스 및 이때 불리는 캐럴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1907년 미국에서는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크리스마스 실이 고안되어 카드에 붙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카드보내는 것이 보급되었다. 실도 1933년 미국 감리회 의료 선교사인 홀(Hall,S.)에 의하여 처음 발행되었다. 또한, 이 날을 중심으로 성대한 연회가 벌어져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이 행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산타할아버지 모양이 만들어진 것은 1863년 나스트(Nast,T.)라는 만화가에 의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하여 마굿간이 만들어져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 양과 짐승들, 아기예수 앞에서 경배드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온세상을 밝히듯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추위에 떠는 이웃은 없는지 돌아보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겨울을 기대해 본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 대열 기자